스모, 씨름과 스모의 차이점
스모(Sumo)-일본
기원
일본의 스모에 대한 문헌상 최초의 기록은 642년 백제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하여 궁정의 호위병들 간에 스모를 시켰다는 것으로 일본 서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때부터를 신사스모라고 하는데 호국풍양을 기원하는 신사로서의 스모였다고 합니다. 793 년부터는 천황이 궁정에서 스모를 보며 잔치를 베푼 의식으로 스모를 행한 절회스모, 1176년 이후 무가 정치 시대로 바뀌며 정치의 한 수단으로서 발전하고 성행되어 직업 선수까지 생겨난 무가스모, 그 후 신사나절의 신축, 보수 등을 위해 스모를 통해 기부금을 모으는 권진스모를 거쳐 근대 스포츠로서의 형태를 갖춘 근대 스모는 1868년 명치 원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1992년에 발간된 일본 스모 대감에 기술되어 있습니다.
경기방법
스모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 의식이 행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소금을 시합장에 뿌리는 것은 나쁜 화와 악령을 없애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또한 선수들이 손뼉을 치고 팔을 벌리며 다리를 들어 땅을 밟는 이유는 신에게 감사하는 뜻이며, 다리를 들어 땅을 밟는 이유는 사악한 귀신을 밟아 쫓아내어 대지를 잠재우고 정신을 가다듬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을 받을 때 중간, 왼쪽, 오른쪽 순서로 손을 긋는 동작은 승리의 3신에게 감사하는 의미입니다.
현재의 스모는 체급제한 없이 실시하는 무체급 경기이나 승률에 따라 10등급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장 높은 제1등급인 요코즈나에서 제 6등급까지 1군(세키도리)이라 하며 세키도리가 되면 많은 특권을 누리며 TV로 중계하는 15일간의 경기에 출전할 수 있습니다.
스모는 모래와 진흙으로 섞어 만든 지름이 약 4.55 m, 높이 0.54 m의 원형 경기장에서 거행되는데 주심의 신호에 따라 경기장 중앙에 서로 마주 보고 웅크리고 앉아 허리를 굽히며 무릎 위에 놓은 좌우 팔목 중 어느 한 손을 먼저 바닥에 대고 호흡을 조정하면서 다음 손을 바닥에 댐과 동시에 일어나며 경기를 시작합니다.
경기 중 밖으로 먼저 나가거나 발바닥 외의 신체 부위가 먼저 바닥에 닿거나 허리 높이 보다 더 높게 들리어져 위험하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패하게 됩니다.또한 주먹으로 치거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눈 등 급소를 찌르거나 치는 경우에는 반칙으로 간주되며 승부는 단판승으로 결정됩니다.
즉, 주심은 여하한 경우에도 동서 양쪽에 승패를 선언해 주어야 합니다.
경기복장은 마하시라고 하는 약 46 cm 넓이의 천을 허리에 3-5회 감는데 천의 두께로 초등학생 및 중학생용, 대학/일반용 등 3 종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스모의 기술은 기본기로서 밀기, 치기, 샅바잡고 밀기 등 세가지로 구분하며 70수의 정규수가 있습니다
씨름과 스모의 차이점
씨름이 5판 3승으로 승자를 가리는 데 비해 스모는 단판 승부입니다. 한번의 실수는 누구나 저지를 수 있다는 너그러움의 씨름과 패자에게는 군소리가 필요 없다는 담백함의 스모로 차이가 있습니다.
게다가 씨름은 백두급, 한라급 등 이렇게 체급의 차이가 있지만 이를 인정치 않는 스모에서는 덩치가 크든 작든 강자만이 살아남습니다. 씨름도 원래 그랬으나 근래에는 체중별로 그룹을 나눕니다.
스모의 심판은 절대적인 존재입니다. 설사 그릇된 판정이 내려지는 한이 있더라도 다소곳이 따릅니다. 반면 씨름에서는 거칠게 어필하는 선수를 발견하는 수가 있습니다. 또 씨름에서의 승자는 포효하는 반면에 스모 선수들은 이기든 지든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의식의 유무도 크게 다릅니다. 스모는 두 선수가 맞붙는 시간보다 시합 전의 요란한 의식에 훨씬 공을 들입니다. 본래 씨름판에는 스모의 도효와 같은 경계가 없고 자연스럽게 빙 둘러쳐진 구경꾼들의 울타리를 넘어서면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붙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승패를 가르는 선의 있고 없음을 두고 섬나라 일본과 대륙으로 이어진 한국의 지정학적 차이를 거론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씨름과 일본 스모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우리나라 씨름은 민중 속에 터전을 잡고 성장하면서 자유를 갈구하는 민중 의식을 표현하는 것과 달리 일본은 황실의 비호 아래 철저한 규율과 형식의 틀 속에서 배양됐다는 점입니다.